[단편 웹소설] 필명 뒤의 얼굴

작성자

카테고리:

AI가 창작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Featured Image 1

이서하는 노트북 화면을 세 번째로 새로고침했다. 랭킹 창 맨 위에 걸린 이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무명(無名)’. 익명 연재 플랫폼 ‘벨라’에서 백사십칠 주째 부동의 1위. 장르는 헌터 아카데미물, 회귀에 각성에 던전 브레이크까지 다 갖춘 전형적인 판타지였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알 수 없는 흡인력이 있었다. 서하는 그 흡인력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벌써 삼 개월째 그 소설을 분석하고 있었다.

“작가님, 오늘도 무명 씨 연구하세요?”

맞은편 자리에서 후배 작가 지완이 웃으며 물었다. 서하는 노트북을 살짝 닫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열었다.

“연구가 아니라 질투야. 나는 삼 개월째 신인상 예선 통과도 못 했는데 저 사람은 등장부터 1위였잖아.”

“그러니까 더 수상해요. 신인인데 처음부터 문장이 완성형이라는 거. 저는 예전부터 그 사람이 기성 작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필명 뒤에 숨은 거물, 뭐 그런 거.”

서하는 픽 웃었다. 지완의 추리는 늘 과감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서하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었다. ‘무명’의 문장은 신인의 문장이 아니었다. 문장의 리듬, 장면 전환의 타이밍, 클리셰를 비틀어 쓰는 감각. 그건 수백 편의 원고를 매만져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이었다.

서하는 사실 자신이 신인 작가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담당 편집자, 강주헌이라는 사람 앞에서만큼은 늘 위축됐다. 강주헌은 서하의 원고를 받을 때마다 딱 세 줄짜리 피드백만 보냈다. 짧지만 정확했다. 서하는 그 세 줄을 받을 때마다 마치 수술대 위에 눕는 기분이었다. 아프지만 낫는 느낌.

“그나저나 오늘 강 편집자님이랑 미팅 있으시죠?”

지완의 물음에 서하는 시계를 확인했다. 세 시. 삼십 분 남았다. 서하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이번 개고본 반응 들어봐야지. 근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더 긴장돼.”

“왜요?”

“몰라. 그냥 예감이 이상해.”

서하는 그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노트북 속 ‘무명’의 랭킹 창을 닫는 순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가슴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강주헌의 사무실은 출판사 3층 구석에 있었다. 문에는 명패도 없이 ‘편집2팀’이라는 종이 한 장만 붙어 있었다. 서하는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강주헌은 늘 그렇듯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들어 앉으라는 신호만 보냈다.

“개고본 다 읽었어요. 3장 전투 시퀀스는 살아났고, 5장 감정선은 아직 헐거워요.”

강주헌의 목소리는 억양이 거의 없었다. 서하는 그 무심함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 스쳤다.

“헐겁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디를…”

“주인공이 각성하는 순간, 감정의 폭발이 스킬 이펙트 묘사에 밀려요. 힘을 얻는 쾌감보다 그 힘을 얻기까지 참아온 시간의 무게가 먼저 와야 해요.”

서하는 노트를 꺼내 받아 적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강주헌의 피드백은 늘 이런 식이었다. 짧고, 정확하고,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안에 어떤 리듬이 있었다. 문장을 고치는 사람 특유의 리듬. 서하는 문득 노트북 화면 한구석에 열려 있던 벨라 앱의 알림을 보았다. ‘무명 님의 신작이 업로드되었습니다.’

“저… 편집자님도 벨라 하세요?”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온 건 거의 반사적이었다. 강주헌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잠깐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서하는 분명히 보았다.

“가끔요. 왜요?”

“거기 1위 하는 무명이라는 작가 아세요? 저 그 사람 문장 스타일이 편집자님 피드백이랑 되게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서요.”

강주헌은 잠깐 서하를 바라보았다.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그 무표정 안에 뭔가가 지나갔다는 것을, 서하는 오래 편집자와 마주 앉아 온 감으로 알아차렸다.

“닮았다니, 그럴 리가요. 저는 제 글은 안 써요.”

그 대답이 너무 빨랐다. 서하는 그 순간 확신 대신 의문을 품었다. 강주헌이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무언가를 지나치게 서둘러 부정했다는 인상이 남았다. 서하는 노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피드백 감사합니다. 다음 주까지 5장 다시 써서 드릴게요.”

“네. 그리고…”

강주헌이 처음으로 먼저 말을 이었다.

“감정을 아끼지 마세요. 서하 작가님 글은 감정을 아끼는 게 제일 큰 단점이에요.”

그 말은 이상하게도 무명의 소설 속 한 문장과 겹쳤다. ‘힘을 아끼는 자는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서하는 사무실을 나오면서 그 문장을 곱씹었다.

그날 밤 서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노트북을 켜고 벨라 앱에 접속해 무명의 신작을 열었다. 첫 화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감정을 아끼는 자는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그것이 이안이 다시 태어나며 얻은 첫 번째 교훈이었다.’ 강주헌이 낮에 했던 말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서하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무명의 이전 연재분을 뒤지기 시작했다. 백사십칠 화 전체를 훑을 수는 없었지만, 서하 자신의 개고 노트에 적힌 강주헌의 피드백 문구들과 비교해보니 놀라운 일치가 발견됐다. ‘스킬 이펙트보다 감정의 무게를 먼저.’ ‘아끼면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클리셰는 비틀 때 비로소 무기가 된다.’ 전부 서하가 받았던 피드백이었고, 전부 무명의 소설 속 문장으로 변주되어 있었다.

서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겹치는 지점이 너무 많았다. 서하는 지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 아까 무명이 기성 작가일 거라고 했잖아. 나 좀 소름 돋는 발견을 한 것 같아.’

답장은 금방 왔다. ‘뭔데요??’

서하는 캡처한 화면들을 나란히 붙여 보냈다. 강주헌의 피드백 메모와 무명의 소설 문장. 지완의 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

‘작가님… 이거 진짜면 대박인데요. 근데 설마 강 편집자님이 진짜 무명이면, 신인 작가들 피드백해주면서 그 아이디어를 자기 소설에 쓴 거예요?’

서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편집자가 여러 신인 작가들의 초고를 거치며 얻은 감각과 문장들을, 익명의 필명 뒤에서 자신의 소설로 완성해 온 것이라면. 서하는 그 생각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동시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배신감보다 먼저 든 것은, 그 정체 모를 흡인력의 정체를 마침내 알았다는 흥분이었다.

서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출판사로 향했다. 밤새 정리한 캡처와 비교 문서를 태블릿에 담아 들고 편집2팀 문을 두드렸다. 강주헌은 여느 때처럼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서하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오늘 미팅 없었을 텐데요.”

“편집자님, 여쭤볼 게 있어서 왔어요.”

서하는 태블릿을 내밀었다. 강주헌의 시선이 화면 위로 옮겨갔다. 캡처된 피드백 메모와 무명의 문장이 나란히 떠 있었다. 강주헌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했고,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렸다.

“이게 뭐죠?”

“편집자님이 저한테 해주신 피드백이랑, 벨라 랭킹 1위 무명 작가님 소설 속 문장이에요. 토씨까지 똑같은 부분도 있어요.”

강주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하는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추측이 맞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강주헌이 낮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언제부터 의심했어요?”

그 질문 자체가 답이었다. 서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진짜였어요? 편집자님이 무명이었어요?”

“네.”

강주헌의 대답은 짧고 담담했다. 서하는 그 짧은 대답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느꼈다. 부정하지 않는 사람 특유의, 이미 오래전부터 들킬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듯한 태도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저희 초고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훔쳤다고 생각해요?”

강주헌이 서하의 말을 끊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처음으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저는 매일 신인 작가 열두 명의 초고를 읽어요. 하루에 열두 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 세계에서 뭐가 부족한지, 뭐가 넘치는지 찾아내는 게 제 일이에요. 그렇게 오 년을 하다 보니까 제 안에 문장이 쌓이더라고요.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두의 것인 문장들이.”

“그럼 무명 소설은…”

“제가 오 년 동안 읽어온 모든 신인 작가들의 결핍과 가능성을 모아서 만든 거예요. 훔친 게 아니라, 배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배운 걸 어디에도 쓰지 못하면 저는 그냥 남의 글만 고쳐주다 사라지는 사람이 되니까.”

서하는 그 말을 듣고도 쉽게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분도 있었다. 강주헌의 피드백은 늘 서하의 부족한 지점을 정확히 찔렀고, 그 정확함은 결국 강주헌 자신의 창작 근육에서 나온 것이었다. 서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물었다.

“근데 그러면, 제가 편집자님한테 받은 피드백들도, 다 편집자님 소설에 쓰였다는 거예요?”

“직접적으로 문장을 가져다 쓰진 않았어요. 하지만 서하 작가님이 감정을 아끼는 인물을 쓸 때마다 제가 느낀 답답함, 그 답답함을 풀어내는 방식을 이안이라는 캐릭터에 녹였어요. 그건 부정 못 해요.”

서하는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무명의 소설 속 이안이라는 캐릭터가 감정을 억누르다가 폭발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 장면들이 유독 생생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건 서하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신인 작가들의 습작 속 감정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캐릭터였던 것이다.

“화가 안 나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이상하게 화보다 더 크게 드는 감정이 있어요.”

“뭔데요?”

“제 글이, 제가 쓴 서툰 문장들이, 누군가에게는 랭킹 1위 소설의 재료가 될 만큼 가치 있었다는 거요.”

강주헌은 그 말에 처음으로 눈을 피했다. 서하는 그 반응에서 이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 순간을 두려워해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편집자로서 쌓아온 신뢰와, 작가로서 갈망해온 인정 사이에서 강주헌은 오랫동안 혼자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강주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하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공개는 안 할 거예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다음 소설, 저랑 같이 써요. 익명 뒤에 숨지 말고, 제 이름 옆에 편집자님 이름도 나란히 걸고요. 그게 편집자님이 오 년 동안 쌓아온 걸 제대로 인정받는 방법 같아서요.”

강주헌은 오랫동안 서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주 옅게, 웃었다.

몇 주 뒤 벨라 플랫폼에는 이례적인 공지가 올라왔다. 랭킹 1위 ‘무명’ 작가가 연재를 종료하고, 새로운 공동 필명으로 신작을 예고한다는 내용이었다. 필명은 ‘이서하 & 강주헌’. 독자들 사이에서는 무명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졌지만, 두 사람은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서하는 사무실 대신 작은 카페에서 강주헌과 마주 앉아 첫 화의 초고를 나눠 읽고 있었다. 강주헌은 여전히 짧고 정확한 피드백을 건넸지만, 이번에는 그 피드백 옆에 자신의 문장도 나란히 적어 넣었다.

“이 부분은 제가 직접 써볼게요. 괜찮아요?”

“네. 대신 그 문장, 제 이름으로도 나가는 거 알죠?”

“알아요. 이제 아끼지 않을게요.”

서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길게 늘어졌고, 두 사람의 노트북 화면 위에는 새로운 이야기의 첫 문장이 나란히 떠 있었다. 더 이상 무명이 아닌, 두 개의 이름으로.


이 글은 AI가 창작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Featured Image 2